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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계절학기 수업을 위해 읽은 책이다.

교수님께서는 이 책의 내용을 각자 부분을 나눠 발제를 해 발표하고, 발제한 내용에 대해 서로 질문과 토론을 나누는 형태의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수업 날,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번 자신의 계절학기 수업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때 먼저 손을 들고 이야기 한건 나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각자 원하는 부분을 선택해 발제를 하고 토론을 나누는 수업 방식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지만,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2점을 주고 싶습니다."

사실 수업 중에 이미 손을 들고 토론에 참여해 이 책의 내용적 부분에 지적한 것이 많았지만, 짧은 수업 시간 동안 다른 학생들에게도 균등한 발표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에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다 말하지 못했다. 


플라이북에 게시된 이 책의 유일한 후기. 정곡을 찌른다.


 

공저 중 한분이 수업 담당 교수님이다. 교수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도저히 이 책의 내용에 칭찬을 하지는 못하겠다.

학점은 A, 허수가 없는 계절학기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높은 학점을 받았다. 목표는 A+이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석차를 보니 A를 받은게 다행인 수준이었더라. 


'오늘 시작한 미래'라는 제목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래가 조금 더 빨리 다가왔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기본소득, 교육 기관의 비대면 수업, 언텍트로 인한 환경 영향 감소를 이야기한다. 미래에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환경 문제를 막기 위해 이동을 줄이고 탄소를 적게 사용하는 언텍트 사회, 그리고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교육 비용 감소에 따른 무상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이러한 미래에 있을 일이 오늘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오늘 시작한 미래'라는 제목이 그렇다.

부제목인 '코로나19 플래시포워딩 브리핑'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책의 서두에서 설명하고 있다. 플래시포워드(Flash-forward)는 영화나 소설이 진행되는 도중에 미래의 한 장면을 끼워넣는 것을 말하며, 코로나19로 인해 미래의 한 장면이 지금 우리 사회에 미래 사회를 잠깐 보여줄것이라는 말이다.


2020년 6월에 쓰여진 책이라, 사실 지금 기준으로는 꽤나 오래된 책이다. 2020년이면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라 지금과 상황도 많이 다르고, 사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모습을 예측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걸 감안하고 보아도 이 책의 내용은 너무 허무맹랑하기만 하다.

기후재난과 인공지능, 대학과 강의실, 민주주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코로나19. 코로나19와 이것들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하나씩 살펴 보자.


기후재난과 인공지능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후재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도넛 경제학'을 설명하면서, 인류는 도넛 위 골디락스 지역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도넛의 안쪽은 경제 활동이 부족한 경우를, 도넛 바깥은 경제 활동이 과잉된 경우를 말한다. 경제 활동이 부족하면 물과 식량이 없어 굶어죽게 되고, 지나친 경제 활동과 낭비는 환경 오염과 기후 재난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이 도넛 바깥의 영역을 찌그러뜨려, 경제 활동으로 인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생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골디락스 도넛 바깥으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코로나19로 미래에 기후 재난으로 인해 '도넛 경제학'에서의 골디락스 존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을, 코로나19로 미리 경험하여 골디락스 존을 넘어갈 정도의 지나친 경제활동을 막기 위한 '봉쇄'를 미리 엿보았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는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탄소 배출량 증가가 정체되고 있기는 하나[1], 개발도상국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환경 오염이나 기후 위기로 인한 결과가 '봉쇄'로 다가오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봉쇄로 인해 탄소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어느정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일상 회복이 조금씩 이루어짐에 따라 대중교통 이용이 기피되고, 오히려 전에는 필요 없던 마스크 등 일회용 개인 방역 용품이 필요해 탄소 배출량은 더 늘었다.

경제 활동 과잉으로 인해 나타날 위기는 결국 식량 위기를 말한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가뭄이나 폭우, 토양 산성화 등으로 농작물을 생산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물론 기후가 변화할수록 식품 재배 기술도 발달해 식량 생산량은 오히려 아직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로 골디락스 존을 벗어나는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와는 사뭇 다르다. 각 나라마다 각 개인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탄소 배출량이 지나치게 많다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봉쇄를 택할 수 있는 정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후 변화에도 거뜬한 신종 식량 작물이 개발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후재난과 인공지능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로봇이 발달해 무인화가 이루어지면, 생산은 인공지능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공지능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실직자가 증가하면 수요도 감소해 수요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이것은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요 부족으로 2차 대공황이 오는 것을 막으려면, 인공지능이 대체한 일자리만큼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라는게 이 책의 주장이고, '플래시 포워드'라는 부제목 내용대로 코로나19로 전국민에게 주어진 재난지원금이 이러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대봉쇄로 대부분 사람들이 출근을 하지 않았고,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사람들은 이 기본소득으로 수요를 간신히 유지한 덕분에 경제가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후재난을 엮어서,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에게 탄소세를 걷고 이를 기본소득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인공지능은 구글 리캡챠나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제작하고 검색한 결과를 바탕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발달에 우리의 기여분이 있고, 탄소세도 마찬가지로 기업이 생산하면서 탄소를 배출해 우리 모두가 피해를 입기 때문에 인공지능 기본소득과 탄소기본소득 모두 우리가 받을 근거가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논리이고, 인공지능 기본소득, 탄소기본소득에 관련한 반박은 2편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다룰 때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대학과 강의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대학은 비대면 수업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마치 이것이 엄청나게 큰 깨달음인 것 마냥 이야기한다.

대학 운영비는 대부분을 등록금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등록비는 인건비와 캠퍼스라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을 유지하는데 쓰인다. 또 모든 강의는 휘발된다. 고등 교육에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비대면 수업에서는 온라인 강의는 휘발되지 않고 녹화하여 여러번 쓸 수 있고, 교수는 강의를 할 시간에 개인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통학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고등 교육의 온라인화로 비용이 줄어들면 학생은 부담이 줄어들어 학교를 더 오래 다닐 수 있고, 더 나아가 재정 부담이 줄어들면 대학 교육의 무상 교육도 가능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온라인 강의는 있었다. 게다가 국비지원 온라인 교육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이미 지금도, 아니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이버대학은 있었다. 저렴한 등록금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고, 또 국비지원 온라인 교육을 활용하면 무상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사이버대학과 국비지원 온라인 교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일반대학을 선호한다. 사이버대학에서는 얻을 수 없는 다양한 대학 내 경험(20학번인 본인은 누리지 못한)들, 그리고 대면강의와 온라인 강의의 집중력 차이가 크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용은 기존 강의실에서의 전통적인 대면 수업이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그 근거가 n번방 사건이나 '신천지' 사태이다. '기존 전통적인 수업의 실패로 n번방이나 신천지같은 사건이 발생했고, 이것은 교육의 실패 때문이고, 때문에 전통적인 수업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온라인 수업을 도입해야 한다.'라는게 이 책의 주장 중 하나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일부 일탈 사례를 근거로 몇 세기동안 변하지 않은 전통적인 교육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매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신천지 교인이 10만명이 넘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수치만 제시하며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실패로 신천지에 빠졌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데, 그렇다면 n번방에도 관련이 없고 신천지에도 빠지지 않은 수천만명의 사람들은 무엇이 되는가.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2년간 온라인 교육의 실패는 갈수록 증명되었다.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은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가장 많이 진행된 2020년에 가장 크게 증가했다.

2021년 아직 코로나19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에도 교육부는 중등교육을 대면수업으로 전환했다. 2020년 온라인 교육으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학도 2022년부터는 전면 대면수업으로 돌아갔다. 온라인 교육이 기존 전통적인 대면 교육보다 더욱 좋은 교육 방식이라면 비대면 수업을 경험한 후 다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이는 온라인 교육이 명백히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 수 세기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수 세기동안 증명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기 때문이다. 신천지 교인이 수십만명이라고 했는가? 이 책의 논리대로 신천지에 빠진 것이 교육의 실패 때문이라고 한다면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수천만명의 국민들 중 넓게 잡아도 1%에 불과하다. 기존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중 코로나19 이전 가장 최고 수준인 수학의 10.8%와 신천지 교인을 중복을 생각하지 않고 합쳐도 11.8%에 불과한데, 그렇게 넉넉하게 잡아도 온라인 교육 이후에 급증한 기초학력 미달 학생비율에 미치지 못한다.

1999년 발표된 '거리의 소멸'이라는 이론이 있었다. 디지털화로 모든 활동이 원격이나 온라인으로 가능해지면, 굳이 회사로 출퇴근할 필요 없이 재택 근무를 하고, 학교를 다닐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거래처로 출장을 가 미팅을 할 필요 없이 화상 회의를 진행하고, 친구와 만날 필요 없이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거리가 소멸될 것이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꽤 그럴듯해 보였고, 내가 어릴 때 읽었던 2000년대 중반에 발간된 만화책 'Why - 정보통신'에서조차 미래 도시에는 거리가 분주하지 않고 모든 것이 원격으로 가능해 사람이 없는 한산한 거리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거리의 소멸'에서는 모든 것이 원격으로 가능해진다면 대도시 주변의 집값이 비쌀 필요도 없고, 택배와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상품을 주문하거나 식재료와 음식을 주문할 수 있으니 굳이 식당이나 마트도 땅값이 비싼 중심가에 위치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알던 붐비는 복잡한 거리는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라 전망했지만, 24년이 지난 지금 이 전망은 크게 빗나갔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고 이전의 일상이 회복되면서 이 이론은 완전히 틀렸음이 한번 더 증명되었다. 오히려 대도시와 지방의 땅값 격차는 더 커졌다.

'거리의 소멸' 이론이 틀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집중력이다. 액정 속에 보이는 것과 실제 그 장소에 방문하는 것도 차이가 크다. 애초에 '거리의 소멸'이 가능했으면 그 전에 여행사가 먼저 망했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를 커다란 고화질 액정 속에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여행을 가는 이유가 없다. 화상 통화가 가능해진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구를 만나러 밖으로 나선다.

대학과 강의실도 그렇다. 온라인 수업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가진 학생이라면 스스로 사이버 대학을 다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전통적인 강의실에서의 수업이 온라인 수업에서보다 높은 성취도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은 사이버 대학 대신 일반 대학을 선택한다.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쓸 말이 많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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